허준
“병을 고치는 의원은 많으나, 병들지 않게 하는 의원이 으뜸이다.”
한 사람의 의원이 평생을 바쳐, 백성 누구나 펼쳐 볼 수 있는 의서를 남겼다.
드라마로도 유명한 그 이름
허준(許浚)은 조선 최고의 명의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의 일대기는 여러 차례 드라마와 소설로 만들어져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남긴 가장 위대한 업적은 따로 있다. 바로 「동의보감(東醫寶鑑)」 이라는, 동아시아 의학을 집대성하고 백성을 향해 활짝 열어 놓은 의서다.
서자로 태어나, 의관이 되다
허준은 1539년, 무관 집안에서 서자(庶子)로 태어났다. 양반의 자손이었지만 첩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출셋길이 막혀 있던 시대였다. 그는 일찍이 의학에 뜻을 두어, 1574년 의과에 급제하고 이듬해 궁중 의료기관인 내의원(內醫院)의 의관이 되었다.
조선에서 서자는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높은 관직에 오르기 어려웠다. 「홍길동전」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서자의 설움을 그린 것도 같은 시대다. 그런 시대에 허준은 오직 실력 하나로 임금의 주치의 자리에까지 오른, 대단히 예외적인 인물이었다.
임진왜란, 왕을 지킨 의원
허준의 실력은 위기 속에서 빛났다. 1590년에는 왕자(훗날 광해군)의 천연두를 고쳐 신임을 얻었고,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피난하는 선조를 의주까지 끝까지 곁에서 모셨다. 많은 신하가 임금을 버리고 달아난 그 난리통에 끝까지 자리를 지킨 공으로, 그는 공신의 반열에까지 추대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 그 공을 인정받아 공신으로 추대되었으나, “중인 신분에 과하다”는 신하들의 반발이 일었다. 뛰어난 업적조차 신분의 잣대로 깎아내리던 시대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선조의 허준에 대한 신뢰는 변함이 없었다.
유배가 낳은 위대한 책
1596년, 선조는 허준에게 백성을 위한 새로운 의서를 편찬하라고 명했다. 그러나 전란으로 작업은 번번이 중단되었다. 결정적 전환점은 뜻밖에도 시련에서 왔다. 1608년 선조가 승하하자, 임금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고 허준은 유배(귀양)를 가게 된다.
그런데 이 유배가 오히려 집필에 전념할 시간을 주었다. 허준은 귀양지에서 흔들림 없이 붓을 들어, 책의 절반 이상을 단기간에 써 내려갔다. 그리고 유배에서 풀려난 뒤인 1610년, 마침내 「동의보감」을 완성한다. 그의 나이 일흔이 넘어서였다. 책은 1613년, 내의원에서 활자로 간행되어 세상에 나왔다.
동의보감, 무엇을 담았나
「동의보감」은 총 25권 25책에 이르는 방대한 의서로, 내용에 따라 다섯 편으로 나뉜다. 사람의 몸을 안에서 밖으로, 그리고 병과 약과 치료법으로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짜임새가 돋보인다.
여기에 전체를 한눈에 찾아볼 수 있는 목록 2권이 더해져, 모두 25권을 이룬다.
동의보감이 위대한 이유
「동의보감」이 단순히 ‘두꺼운 의학책’에 그치지 않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허준은 증상 하나하나를 따로 떼어 보지 않고, 몸 전체의 조화와 생명력(精氣神)을 중심에 두었다. 병을 고치는 것보다 병에 걸리지 않게 몸을 다스리는 양생(養生)을 앞세운 점이, 오늘날의 예방의학과도 통한다.
가장 빛나는 대목이다. 허준은 우리 땅에서 나는 약재(향약·鄕藥)의 이름을 한글로 나란히 적어 두었다. 한문을 모르는 백성도 산과 들에서 약초를 찾아 쓸 수 있게 한 것이다. 비싼 중국 약 대신 값싼 우리 약재로 병을 다스리게 한, 진정 백성을 위한 배려였다.
허준은 당시까지 전해지던 중국과 조선의 수많은 의서를 하나로 정리하고 체계화했다. 흩어져 있던 의학 지식을 한 권으로 꿰어, 누구든 필요한 처방을 빠르게 찾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세계가 인정한 보물
「동의보감」의 가치는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가 인정했다. 간행 이후 중국과 일본에서도 여러 차례 출간되어 동아시아 의학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2009년, 「동의보감」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한 나라의 의학서가 세계기록유산이 된 것은 「동의보감」이 처음이었다. “질병의 예방과 국가 주도의 공공 의료라는 이상을 담았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국보 제319호로도 지정되어 있다.
맺으며 — 백성을 향한 의술
허준은 서자라는 신분의 벽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오직 실력과 성실함으로 한 시대 최고의 의원이 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안주하는 대신, 이름 없는 백성들이 병으로 스러지지 않도록 평생의 지식을 한 권의 책에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동의보감」이 400년이 지난 지금도 빛나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의학 지식 때문만이 아니다. 가장 낮은 곳의 사람까지 살리려 한 따뜻한 마음이 책장마다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허준을, 그리고 그가 남긴 동의보감을 민족의 보물이라 부른다.
참고자료 및 더 알아보기
이 글은 조선의 명의 허준의 생애와 그의 의서 「동의보감」을 일반 독자가 알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일부 일화(선조의 명 등)는 후대에 전해지는 이야기로, 세부에는 학자마다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