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두릅, 엄나무가 내미는
봄의 첫 순
잡귀를 막는다 하여 대문에 걸던 가시나무, 엄나무.
그 가지 끝에 돋는 새순이 두릅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는 개두릅입니다.
海 桐 · 개 두 릅 · Kalopanax septemlobus
"두릅에도 격(格)이 있습니다." 참두릅·땅두릅과 더불어 봄 산을 대표하는 나물 가운데, 사람들이 한결같이 으뜸으로 꼽는 것이 바로 개두릅입니다. 개두릅은 가시투성이 큰키나무인 엄나무(음나무)가 봄에 내미는 첫 순입니다. 예부터 그 가시 돋은 가지는 잡귀를 막는 신목(神木)으로 대문에 걸렸고, 껍질은 해동피(海桐皮)라는 약재로 쓰였습니다. 쌉쌀한 향 끝에 은은히 도는 인삼 향, 그 깊은 봄맛의 정체를 살펴봅니다.
개두릅이란 — 엄나무의 첫 순
개두릅은 엄나무(음나무, Kalopanax septemlobus)의 가지 끝에 돋는 어린 새순입니다. '두릅을 닮았다'는 뜻에서 개두릅이라 불리지만, 정작 그 맛과 약효는 참두릅을 능가한다 하여 두릅 가운데 으뜸으로 칩니다. 참두릅보다 쌉쌀한 맛과 향이 훨씬 진하고, 오래 씹으면 은은한 인삼 향이 입안에 퍼집니다.
엄나무는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키 큰 나무로, 다 자라면 높이 25~30m에 이르고 수백 년을 사는 장수목입니다. 어린 가지와 줄기에는 굵고 날카로운 가시가 빽빽하게 돋아 있어, 봄에 그 가시 사이로 솟아오르는 첫 순을 조심스레 따 먹습니다.
왜 '개'두릅인가
우리말에서 '개-'는 본래 '참-'에 견주어 한 급 낮거나 비슷하지만 다른 것을 가리키는 접두어입니다. 두릅나무가 아닌 엄나무에서 나기에 '개두릅'이라 이름 붙었을 뿐, 맛과 약효로는 결코 참두릅에 뒤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향이 더 진하고 약성이 강해, 산나물을 아는 사람일수록 개두릅을 먼저 찾습니다.
엄나무라는 나무 — 가시로 잡귀를 막던 신목
엄나무의 가장 큰 특징은 줄기를 뒤덮은 험상궂은 가시입니다. '엄하다'에서 이름이 왔다는 말이 있을 만큼 함부로 손댈 수 없는 이 가시 때문에, 엄나무는 오래도록 잡귀와 액운을 막는 신목(神木)으로 여겨졌습니다.
가시 돋은 엄나무 가지를 대문이나 문설주 위에 가로로 걸어 두면 잡귀가 들어오지 못한다고 믿었고, 충청도 일부 지방에서는 도둑을 막아 준다고도 했습니다. 한 그루의 나무가 봄에는 나물을, 약장에는 약재를, 그리고 집에는 부적을 내어 준 셈입니다.
엄나무 한 그루의 네 가지 쓰임 — 봄의 새순은 개두릅 나물로, 껍질은 해동피 약재로, 가시 돋은 가지는 벽사와 백숙으로, 굵은 줄기는 재목으로 쓰였습니다. 버릴 것 없는 나무입니다.
참두릅과 개두릅 — 무엇이 다른가
같은 두릅나무과의 새순이지만, 참두릅과 개두릅은 난 나무가 다르고 맛도 다릅니다. 참두릅이 은은하고 부드러운 향이라면, 개두릅은 쌉쌀함과 향이 한층 짙고 끝에 인삼 향이 돕니다.
| 구분 | 참두릅 | 개두릅 |
|---|---|---|
| 난 나무 | 두릅나무(楤木) | 엄나무(음나무, 海桐) |
| 향·맛 | 은은하고 향긋하며 살짝 쌉쌀합니다. | 쌉쌀함과 향이 진하고, 끝에 인삼 향이 돕니다. |
| 생김새 | 줄기가 짧고 통통하며 잔가시가 있습니다. | 줄기가 길고 굵은 가시가 있으며 잎이 큽니다. |
| 약효·평가 | 약효가 좋아 두루 사랑받습니다. | 약효가 더 강해 두릅 중 으뜸으로 칩니다. |
| 값 | 중간~높음 | 중간~높음(고급 산채) |
두릅나무과에는 이 둘 말고도 여러해살이 풀인 독활(獨活, 땅두릅), 이름난 보약 뿌리인 인삼, 기운을 보하는 오가피(가시오갈피)가 함께 모여 있습니다. 개두릅의 쌉쌀한 맛 끝에 인삼 향이 도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이 가족이 공유하는 사포닌 때문입니다.
한 번 그 진한 향을 알면, 해마다 봄이면 개두릅을 먼저 찾게 됩니다." — 산나물을 아는 이들의 말
한의학의 엄나무 — 해동피(海桐皮)
엄나무는 새순을 봄나물로 먹을 뿐 아니라, 그 줄기껍질(海桐皮)과 뿌리껍질(海桐根皮)을 오래도록 약재로 써 온 본초(本草)입니다. 초여름에 껍질을 벗겨 가시를 긁어내고 볕에 말려 씁니다.
한의학적 다섯 가지 효능
- 거풍제습(祛風除濕) — 풍(風)과 습(濕)을 몰아내는 작용. 풍습으로 인한 관절염·신경통·요통에 두루 쓰여 왔습니다.
- 통경활락(通經活絡) — 경락을 통하게 하고 혈을 돌게 함. 사지의 마비·저림과 굴신 불리에 작용합니다.
- 살충지양(殺蟲止痒) — 벌레를 죽이고 가려움을 멎게 함. 옴·버짐 같은 피부 질환에 외용으로 썼습니다.
- 청열지리(淸熱止痢) — 열을 식히고 이질·설사를 멎게 하는 작용. 장(腸)의 염증을 가라앉힙니다.
- 진해거담(鎭咳祛痰) — 기침을 가라앉히고 가래를 삭이는 작용. 기관지 질환에 보조적으로 쓰입니다.
허리와 무릎, 사지의 통증을 다스리는 약재입니다." — 본초·동의보감 종합 해석
같은 두릅나무과의 독활(獨活)이 허리·다리의 통증을 다스리고, 오가피가 근골을 튼튼히 하듯, 엄나무 또한 풍습과 관절·근맥을 다스리는 약성을 지닙니다. 한 가족의 식물들이 비슷한 효능으로 갈래갈래 쓰여 온 셈입니다.
현대 약리 — 세 가지 성분의 힘
한의학이 '거풍습·통락'이라 표현한 엄나무의 약효는, 현대 분석에서 세 갈래의 성분으로 풀려나고 있습니다. 개두릅 새순과 해동피 껍질 모두에서 확인되는 성분들입니다.
주목받는 효능
- 항염·관절 — 사포닌의 소염 작용이 관절염·염증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됩니다.
- 혈당 조절 — 사포닌이 혈당 상승을 완만하게 하여, 두릅나무과 식물 공통의 항당뇨 작용으로 연구됩니다.
- 기관지·거담 — 사포닌이 가래를 삭이고 기침을 완화해, 기관지 질환에 보조적으로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봄철 보충 — 단백질·칼슘·비타민이 풍부해 겨우내 부족했던 영양을 채우는 고급 봄나물입니다.
고르는 법 · 손질 · 보관
좋은 개두릅 고르기
- 크기 — 잎이 활짝 벌어진 것보다, 순이 단단히 뭉쳐 막 벌어지려는 것이 향과 식감이 좋습니다.
- 색·상태 — 밝은 연두빛에 받침잎의 자줏빛이 선명하고, 마르거나 검게 변한 곳이 없는 것을 고릅니다.
- 밑동 — 밑동이 지나치게 굵거나 질겨진 것은 센 것이니, 연한 것을 고릅니다.
가시와 밑동 손질
- 밑동의 단단한 부분과 잔가시를 칼로 도려내고 다듬습니다. 엄나무 가시는 참두릅보다 굵으니 주의합니다.
- 밑동이 굵으면 열십(十) 자로 칼집을 내어, 데칠 때 속까지 고루 익게 합니다.
개두릅은 반드시 데쳐 먹습니다. 생것에는 위장을 자극하는 성분과 약간의 독성이 있어, 날로 먹으면 배탈이 날 수 있습니다.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밑동부터 넣어 2~3분 충분히 데친 뒤 찬물에 헹궈, 쌉쌀한 맛을 적당히 우려내고 조리합니다.
보관
- 생것 — 젖은 신문지나 키친타월에 싸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하고, 2~3일 내 먹는 것이 좋습니다.
- 오래 두려면 — 살짝 데쳐 물기를 짠 뒤 한 번 먹을 분량씩 나눠 냉동하면 향 손실을 줄일 수 있습니다.
조리 — 봄맛을 살리는 법
개두릅은 참두릅보다 쓴맛이 강하므로, 잘 데쳐 쓴맛을 적당히 우려내는 것이 조리의 첫걸음입니다. 그 진한 향은 단순하게 즐길수록 더 살아납니다.
다섯 가지 즐기는 법
- ① 초고추장 무침(숙회) — 데친 개두릅을 초고추장에 무치거나 찍어 먹습니다. 진한 쌉쌀함과 새콤달콤한 장이 가장 잘 어울리는 기본 차림입니다.
- ② 개두릅전 — 데친 순에 밀가루·달걀옷을 입혀 부칩니다. 쓴맛이 부드러워져 아이도 먹기 좋습니다.
- ③ 된장 무침·장아찌 — 된장·참기름에 무치거나, 간장에 절여 장아찌로 두면 제철이 지나도 향을 오래 즐깁니다.
- ④ 개두릅 밥·솥밥 — 데쳐 송송 썬 개두릅을 밥에 얹어 지으면, 쌉쌀한 향이 밥에 은은히 뱁니다.
- ⑤ 엄나무 백숙 — 가시를 다듬은 엄나무 가지를 닭과 함께 푹 고면, 국물에 약 향이 우러난 보양식이 됩니다. 새순이 아닌 가지를 쓰는 전통 활용법입니다.
개두릅을 즐기는 권유와 주의
개두릅은 일 년 중 봄 한 철, 그것도 짧게 지나가는 고급 산채입니다. 귀한 만큼 욕심내기보다, 제철에 신선한 것을 잘 데쳐 향째 즐기는 것이 개두릅을 가장 잘 누리는 길입니다.
가장 좋은 때
- 제철은 4월 안팎입니다. 잎이 벌어지기 직전, 순이 단단히 뭉친 첫물 개두릅이 향과 약성이 가장 진합니다.
- 관절·혈당·기관지를 위해서라면 제철에 데쳐 꾸준히 곁들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주의 사항
- 반드시 데쳐 먹기 — 생개두릅은 위장을 자극하고 약간의 독성이 있어, 날로 먹으면 안 됩니다. 끓는 물에 충분히 데쳐 조리합니다.
- 당뇨약·인슐린 복용자 — 사포닌의 혈당 강하 작용이 약효와 겹쳐 저혈당을 부를 수 있으니, 섭취 전 의료진과 상의합니다.
- 알레르기·체질 — 드물게 두릅나무과 식물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을 수 있으니, 처음에는 소량으로 시작합니다.
- 산에서의 채취 — 비슷하게 생긴 다른 식물과 혼동할 수 있고 가시에 다칠 수 있으니, 확실하지 않으면 믿을 수 있는 경로로 구입합니다.
가시 끝에서 피어나는 봄의 정수
개두릅은 가장 험한 가시나무가 내미는, 가장 귀한 봄의 순입니다.
잡귀를 막던 엄나무가 봄이면 잠시 가시를 누그러뜨리고,
인삼 향이 도는 그 진한 첫 순을 우리에게 건넵니다.
잘 데친 개두릅 한 접시에, 봄 산의 가장 깊은 향이 담겨 있습니다.
海 桐 · K A L O P A N A X S E P T E M L O B U S
참고 자료
- 동의보감(東醫寶鑑) · 본초강목(本草綱目) — 해동피(海桐皮) 조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음나무 · 엄나무 · 해동피
- 국립산림과학원 — 음나무 번식·재배 기술 / 산림청 임산물 정보
- 국립농업과학원 · 식품의약품안전처 — 개두릅(음나무순) 영양성분
- "A New Triterpene Hexaglycoside from the Bark of Kalopanax septemlobus" — PMC (NCBI)
- 한의위키 · 약초 자료 — 해동피 성미·귀경·효능
- Wikipedia(en) — Kalopanax septemlobus, Saponin, Lignan, Rutin
이미지 출처 및 라이선스
- 개두릅 새순(카드용) — Aomorikuma, 2004, CC BY-SA 3.0
- 엄나무 가시 — Sten Porse, 2005, CC BY-SA 3.0
- 엄나무 잎 — Sten Porse, 2005, CC BY-SA 3.0
- 엄나무 한 그루 — Sten Porse, 2005, CC BY-SA 3.0
- 데친 개두릅 — 경빈마마, 2009, CC BY 4.0
- 엄나무 부위별 쓰임 도해 — 감초마켓 자체 제작(SV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