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위의 약, 곡식
동의보감이 본 끼니 속의 약, 곡식 이야기「동의보감」의 탕액편(湯液篇)은 약이 되는 재료를 종류별로 나누어 정리한 부분입니다. 그 가운데 곡부(穀部)는 쌀·보리·밀·콩처럼 우리가 날마다 밥상에서 마주하는 곡식을 다룹니다. 흥미로운 점은, 옛 의서가 이 곡식을 단지 배를 채우는 끼니로만 보지 않고 기운을 기르고 속을 다스리는 약(藥)으로도 여겼다는 것입니다. 가장 흔한 음식이 곧 가장 든든한 약이라는 시선이 곡부에 담겨 있습니다.
곡식을 '약'으로 본 까닭
한의학에서는 몸의 기운을 기르는 바탕을 음식, 그중에서도 곡식에 두었습니다. 매일 먹는 밥이 비위(脾胃)를 채우고, 그렇게 채워진 기운이 온몸을 돌며 살과 힘을 길러 준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탕액편 곡부는 약초를 다루듯 곡식 하나하나의 성질(맛과 차고 따뜻함)과 쓰임을 또박또박 적어 두었습니다. 곡식을 단순한 식량이 아니라 '날마다 먹는 약'으로 본 셈입니다. 다만 이는 음식을 귀하게 여긴 전통적 관점이며, 어떤 곡식이 병을 낫게 한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쌀과 보리, 밀 — 끼니의 중심
粳米 平胃氣 長肌肉 (갱미 평위기 장기육)멥쌀은 위(胃)의 기운을 고르게 하고 살을 길러 준다고 전합니다.
곡부는 멥쌀(粳米, 갱미)을 두고 위의 기운을 고르게 하고 속을 따뜻하게 하며 기운을 보탠다(益氣)고 적었습니다. 끈기가 있는 찹쌀(糯米, 나미)은 속을 데우는 성질이 더하다고 보았고, 보리(大麥, 대맥)는 "기운을 돕고 속을 고르게 한다(益氣調中)"고 하여 든든한 곡식으로 꼽았습니다. 밀(小麥, 소맥)은 도리어 열을 식히고 답답함을 풀어 주는 서늘한 성질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같은 곡식이라도 따뜻함과 서늘함이 저마다 달라, 옛 사람들은 그 결을 살펴 가려 먹었던 것입니다.
콩과 팥, 녹두 — 작지만 알찬 약
곡부에는 콩류도 빠지지 않습니다. 콩(大豆, 대두), 특히 검은콩은 기운을 더하고 속을 고르게 하는 곡식으로 전해졌습니다. 팥(赤小豆, 적소두)은 물길을 잘 통하게 하여 부기를 빠지게 한다고 보아, 부종이 있을 때 즐겨 쓰였습니다. 녹두(綠豆)는 성질이 서늘하여 열을 식히고 더위를 풀어 준다고 하여, 여름철 음식으로 곧잘 올랐습니다. 작은 알갱이 하나하나에도 저마다 다른 성질을 부여한 데에서, 흔한 먹거리를 허투루 보지 않은 옛 시선이 엿보입니다.
곡식을 약처럼 누리는 생활
穀 곡식을 약처럼 누리는 생활 습관 6가지
- 흰쌀밥에 잡곡을 곁들입니다. 보리·콩·현미 같은 통곡물을 조금씩 섞어 보세요. 한 가지에 치우치기보다 여러 곡식을 고루 누리는 편이 옛 시선에도, 오늘의 식생활에도 잘 맞습니다.
- 제철과 쓰임에 맞게 골라 먹습니다. 서늘한 성질로 본 녹두나 팥은 더운 철에, 속을 데운다고 본 찹쌀은 추운 철에 곁들이는 식으로 계절과 기분에 맞춰 즐겨 보세요.
- 콩으로 단백질을 채웁니다. 콩·검은콩·두부·콩자반처럼 콩으로 만든 음식을 식단에 넣어, 곡식과 단백질을 함께 누리는 균형 잡힌 한 끼를 마련하세요.
- 속이 편치 않을 땐 죽으로. 입맛이 없거나 소화가 부담스러운 날에는 멥쌀로 묽게 끓인 죽이 도움이 됩니다. 옛 사람들도 죽을 두고 위장을 편안히 하는 음식으로 여겼습니다.
- 너무 정제된 것만 먹지 않습니다. 곱게 깎아 낸 흰 곡식에만 기대기보다, 겉을 덜 벗긴 통곡물도 번갈아 즐겨 거친 결을 잃지 않도록 합니다.
- 아무리 좋아도 과식은 삼갑니다. 곡식이 기운을 기르는 약이라 하여도,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도리어 속을 무겁게 합니다. 적당한 양을 천천히, 골고루 드세요.
참고 자료
- 「동의보감」 탕액편 곡부(穀部), 허준, 1613 — 한의학고전DB(mediclassics.kr), 위키문헌 「동의보감/탕액편」
-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약자원연구센터(herba.kr) — 갱미(粳米)·대맥(大麥)·적소두(赤小豆)·녹두(綠豆) 항목
이미지 출처 및 라이센스
- 「동의보감」 본문 면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