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과로가 부르는 병, 내상(內傷)
동의보감이 본 비위(脾胃)와 후천의 근본병이라 하면 흔히 밖에서 들어온 추위나 더위, 나쁜 기운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동의보감」은 잡병편 내상문(內傷門)을 따로 두어, 몸 안에서 비롯되는 병, 곧 내상(內傷)을 비중 있게 다루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옛 의서가 거듭 강조한 것은 먹고 마시는 일과 일상의 과로가 비위(脾胃)를 상하게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비위는 음식을 받아들이고 삭여 몸 곳곳에 기운을 보내는 자리로 여겨졌고, 그래서 비위가 무너지면 온갖 병이 뒤따른다고 보았습니다.
비위가 상하면 온갖 병이 생긴다
內傷脾胃 百病由生 (내상비위 백병유생)비위(脾胃)가 안으로 상하면 온갖 병이 여기서 비롯됩니다.
이 말은 비위론(脾胃論)을 펼친 옛 의가(醫家)의 핵심 관점으로, 「동의보감」 내상문도 같은 시선을 이어받았습니다. 한의학에서 비위는 음식을 받아들여 기운으로 바꾸는 곳, 곧 태어난 뒤 살아가는 힘이 다시 채워지는 '후천(後天)의 근본'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옛 의서는 비위가 든든해야 다른 장부도 제 몫을 한다고 보았고, 비위가 약해지면 그 영향이 몸 전체로 번진다고 풀이했습니다. 물론 이는 전통 의학의 해석 틀이며, 오늘날의 진단 기준과 같은 것은 아닙니다.
음식이 부르는 병 — 飮食傷(음식상)
「동의보감」은 내상을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그 하나가 먹고 마시는 데서 오는 음식상(飮食傷)입니다. 굶주려 비위에 들어오는 것이 모자라도 탈이 나지만, 거꾸로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거나 차고 기름진 것을 지나치게 들이는 것도 비위를 상하게 한다고 보았습니다. 배가 더부룩하고 답답하며, 신물이 오르거나 입맛이 없고, 먹은 것이 잘 내려가지 않는 모습을 옛 기록은 음식이 비위에 부담을 준 신호로 풀이했습니다. 다만 이런 옛 풀이는 당시의 이해 방식일 뿐이며, 소화불량이 오래 이어진다면 자가 판단에 기대기보다 진료를 받아 보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과로와 근심이 부르는 병 — 勞倦傷(노권상)
또 한 갈래는 지나친 일과 피로, 그리고 마음 씀에서 오는 노권상(勞倦傷)입니다. 옛 의서는 몸을 과도하게 부리거나 쉬지 못하고, 근심과 생각이 깊으면 비위의 기운이 축난다고 보았습니다. 음식이 모자라지 않아도 늘 기운이 없고 나른하며, 말하기조차 귀찮고 식은땀이 나는 모습을 노권상의 자취로 살핀 것입니다. 음식상이 '들어오는 것'의 문제라면, 노권상은 '쓰는 것'이 지나쳐 비위가 지친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옛 사람들이 일과 휴식, 마음의 안정을 함께 강조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비위를 지키는 일상 습관
脾 비위를 지키는 일상 습관 6가지
- 과식을 피하고 알맞게 먹습니다. 한꺼번에 배부르게 먹기보다 적당한 양으로 그칩니다. 비위는 가득 채우기보다 조금 모자란 듯 비워 두는 편이 편하다고 보았습니다.
- 식사 시간을 규칙적으로 지킵니다. 끼니를 들쭉날쭉 거르거나 몰아 먹지 말고, 일정한 때에 맞추어 드세요. 규칙적인 식사가 비위의 리듬을 지켜 줍니다.
- 천천히 꼭꼭 씹어 먹습니다. 급하게 삼키면 비위에 부담이 큽니다. 한 입을 충분히 씹어 넘기면 소화의 첫 단계를 입에서 덜어 주는 셈입니다.
- 따뜻한 음식을 가까이하고 찬 음식을 절제합니다. 차고 날것을 과하게 들이면 비위가 쉬 지친다고 보았습니다. 속이 편치 않을 때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식이 도움이 됩니다.
- 야식과 과음을 줄입니다. 늦은 밤에 먹는 음식과 잦은 술자리는 비위가 쉴 틈을 빼앗습니다. 잠들기 전 두어 시간은 비위를 비워 두세요.
- 과로와 근심을 줄이고, 식후엔 가볍게 움직입니다. 지나친 일과 깊은 근심은 비위의 기운을 축냅니다. 충분히 쉬고, 식사 뒤에는 가벼운 산책 정도로 몸을 풀어 주세요.
참고 자료
- 「동의보감」 잡병편 내상문(內傷門), 허준, 1613 — 한의학고전DB(mediclassics.kr), 위키문헌 「동의보감」
- 「비위론(脾胃論)」, 이동원(李東垣) — "內傷脾胃 百病由生" 및 음식상(飮食傷)·노권상(勞倦傷)의 구분
- 「황제내경」 소문 — 비위를 음식과 기운의 근본으로 본 관점
이미지 출처 및 라이센스
- 「동의보감」 본문 면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