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의 약초, 향약(鄕藥)
「동의보감」 탕액편이 한글로 적어 둔 우리 약초 사전「동의보감」은 흔히 병과 증상을 다룬 책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마지막 큰 줄기인 탕액편(湯液篇)은 결이 조금 다릅니다. 이곳은 병을 풀어 가는 데 쓰는 약재 그 자체를 모아 놓은 방대한 본초(本草) 사전입니다. 풀과 나무, 곡식과 채소, 흙과 돌과 쇠붙이에 이르기까지, 우리 둘레에서 약이 될 만한 것들을 부(部)별로 갈래지어 그 성질과 효능을 적어 두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약초가 가장 많이 실린 곳이 바로 초부(草部)입니다.
탕액편은 '우리 약초 사전'이었습니다
탕액편은 약물에 관한 부분으로, 첫머리에 약을 다루는 큰 원칙을 적은 탕액서례(湯液序例)를 두고, 이어서 수부(水部)·토부(土部)·곡부(穀部)부터 초부(草部)·목부(木部), 그리고 옥·돌·쇠붙이에 이르기까지 약재를 갈래에 따라 나누어 실었습니다. 여기에 담긴 약재는 600여 가지에 이른다고 전해지며, 그 가운데 풀을 모은 초부(草部)와 나무를 모은 목부(木部)가 탕액편의 약 3분의 1을 차지할 만큼 큰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탕액편은 옛 사람들이 주변에서 구할 수 있던 약초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일종의 '우리 약초 사전'이었던 셈입니다.
각 약재 항목에는 그 성질과 맛, 어떤 데에 쓰는지, 어디에서 어떻게 나는지가 차분히 적혀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약초 하나하나의 효능을 늘어놓기보다, 탕액편이 약초를 바라본 큰 그림과 그 안에 담긴 마음을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한자 이름 아래 한글로 적은 까닭 — 향약(鄕藥)의 정신
탕액편에서 가장 자주 이야기되는 특징은, 약재의 한자 이름 아래에 한글로 그 우리말 이름을 나란히 적어 둔 점입니다. 이렇게 적은 토박이 이름을 향약명(鄕藥名)이라고 합니다. 향약(鄕藥)이란 멀리서 들여오는 약이 아니라 우리 땅에서 나는 약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작은 한글 표기에는 큰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보통 사람도 약재의 이름을 알아보고, 들과 산에서 그 풀을 직접 찾아 캐어 쓸 수 있게 하려는 배려였습니다. 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외래 약재에 기대기보다, 가까운 우리 땅의 약초를 제 이름으로 알고 누리게 하려는 마음이 깔려 있었던 것입니다. 「동의보감」이 백성을 위한 의서로 오래 사랑받아 온 데에는, 이렇게 약을 손닿는 곳으로 끌어내린 향약의 정신이 큰 몫을 했습니다.
초부에 담긴 낯익은 이름들 — 그리고 약을 캐는 때
초부를 들춰 보면 오늘날 우리에게도 익숙한 약초들이 줄지어 나옵니다. 단맛으로 여러 약을 어우러지게 한다는 감초(甘草), 기운을 돕는 약으로 이름난 인삼(人蔘), 피와 관련된 처방에 두루 쓰인 당귀(當歸), 우리 밥상에도 오르는 뿌리채소이자 약재인 길경(桔梗, 도라지), 그리고 생지황(生地黃) 같은 이름들이 그렇습니다. 이런 약초들이 저마다의 성질과 쓰임과 함께, 우리말 이름을 곁들여 실려 있었습니다.
탕액편은 약초를 모아 두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언제 거두어야 하는지까지 일러 두었습니다. 탕액서례의 채약법(採藥法)에 전하는 한 구절입니다.
凡採藥 多以二月八月採 (범채약 다이이월팔월채)무릇 약을 캐는 것은 흔히 음력 이월과 팔월에 합니다.
이른 봄에는 약 기운이 뿌리에 모여 막 위로 오르려 하고, 가을이 되면 잎과 줄기가 마르며 그 기운이 다시 아래로 돌아 내린다고 보았기에, 그 길목인 봄과 가을을 약 캐기 좋은 때로 여긴 것입니다. 같은 풀이라도 거두는 때에 따라 약으로서의 값이 달라진다고 본 셈인데, 이는 우리 땅의 약초를 오랜 살핌으로 다루어 온 옛 사람들의 안목을 보여 줍니다.
우리 약초를 슬기롭게 누리는 법
草 우리 약초를 슬기롭게 누리는 생활 습관 6가지
- 차(茶)는 가볍게 즐기는 정도로. 결명자차·도라지차처럼 흔히 즐겨 온 약초차는 일상에서 부담 없이 곁들이는 정도로만 누리세요. 약초도 약이므로, 많이 마실수록 좋다는 생각은 권하지 않습니다.
- 이름과 출처를 정확히 확인합니다. 비슷하게 생긴 풀이라도 종류가 다르면 성질이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들이나 산에서 임의로 캔 것을 함부로 쓰지 마시고, 정확한 이름과 어디서 난 것인지가 분명한 약초만 다루세요.
- 믿을 수 있는 곳에서 구입합니다. 식용·약용으로 안전이 확인된 경로에서 구하고, 보관 상태가 좋은지(곰팡이·습기·이상한 냄새가 없는지) 살핀 뒤에 사용하세요.
- 다른 약과 함께라면 전문가와 상담합니다. 복용 중인 약이 있다면, 약초차나 약재가 그 약과 어떻게 어우러질지 알기 어렵습니다. 함께 들기 전에 한의사·의사·약사 등 전문가와 먼저 상의하세요.
- 임신·수유 중이거나 만성질환이 있다면 더 조심합니다. 이 시기에는 가벼워 보이는 약초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자가 판단으로 약재를 들지 마시고 반드시 전문가의 안내를 받으세요.
- 이상 반응이 있으면 곧바로 멈추고 진료받습니다. 약초차나 약재를 든 뒤 속이 불편하거나 두드러기·어지러움 같은 이상이 나타나면 즉시 사용을 멈추고, 증상이 이어지면 의료기관의 진료를 받으세요.
참고 자료
- 「동의보감」 탕액편(湯液篇) 탕액서례·초부(草部), 허준, 1613 — 한의학고전DB(mediclassics.kr), 위키문헌 「동의보감/탕액편」
- 「동의보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향약명·향약 정신 관련 서술)
이미지 출처 및 라이센스
- 「동의보감」 본문 면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