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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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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SHAKESPEARE · 1564–1616

윌리엄 셰익스피어

인간의 모든 것을 무대에 올린 작가
셰익스피어 초상화
‘챈도스 초상’ — 셰익스피어를 그린 것으로 전하는 가장 유명한 초상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 한 문장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매일 그가 만든 말을 쓰며 살고 있다.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그는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고 인용되는 작가다.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 「맥베스」… 그의 희곡은 시대와 국경을 넘어 끊임없이 무대에 오른다. 그는 단순히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랑과 질투, 야망과 후회를 누구보다 깊이 들여다본 사람이었다.

온 세상은 하나의 무대요, 모든 인간은 그저 배우일 뿐이다. — 「뜻대로 하세요」 중에서

스트랫퍼드의 장갑장수 아들

셰익스피어는 1564년, 영국의 작은 마을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장갑을 만들어 파는 상인이자 마을의 유지였다. 그는 마을 문법학교에서 라틴어와 고전을 배웠지만, 대학에는 가지 않았다.

스트랫퍼드의 셰익스피어 생가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 남아 있는 셰익스피어의 생가 (현재는 박물관)
이거 아세요? — 태어난 날과 죽은 날이 같다?

정확한 출생일 기록은 없지만, 세례 기록(4월 26일)으로 미루어 4월 23일에 태어났다고 전한다. 그런데 그가 세상을 떠난 날도 1616년 4월 23일. 태어난 날과 죽은 날이 같다는 이 우연이 그의 전설을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수수께끼의 결혼, 그리고 ‘잃어버린 시절’

열여덟 살의 셰익스피어는 여덟 살 연상인 앤 해서웨이와 결혼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곧 세 아이가 태어났다. 그런데 이후 약 7년간, 그가 무엇을 하며 어떻게 런던으로 갔는지는 기록이 거의 없어 ‘잃어버린 시절(lost years)’이라 불린다.

앤 해서웨이의 집
셰익스피어의 아내 앤 해서웨이가 살던 집 (스트랫퍼드 인근 쇼터리)
아내에게 남긴 ‘두 번째로 좋은 침대’

셰익스피어의 유언장에는 묘한 대목이 있다. 아내 앤에게 재산 대신 “두 번째로 좋은 침대”를 남긴다고 적은 것이다. 냉대였는지, 아니면 부부가 함께 쓰던 정든 침대를 남긴 애정의 표시였는지 — 지금도 학자들의 해석이 갈린다.

런던, 무대를 정복하다

런던에 자리 잡은 셰익스피어는 배우이자 극작가, 그리고 극단의 공동 주주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극단은 템스강가에 자신들의 극장 ‘글로브(The Globe)’를 세웠고, 이곳에서 그의 걸작들이 초연되었다. 신분 낮은 서민부터 귀족까지, 런던 사람들은 그의 연극에 울고 웃었다.

셰익스피어의 글로브 극장
1997년 런던에 복원된 ‘글로브 극장’ — 셰익스피어 시대의 모습을 재현했다
대포 한 발에 잿더미가 된 극장

1613년, 「헨리 8세」를 공연하던 도중 무대 효과로 쏜 대포의 불씨가 초가지붕에 옮겨붙어 글로브 극장이 통째로 불타버렸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고, 한 남자는 불붙은 바지를 맥주로 꺼서 화상을 면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셰익스피어의 극단은 1603년 제임스 1세가 즉위하자 왕의 후원을 받는 ‘국왕 극단(King’s Men)’으로 격상되었다. 인기 작가이자 사업가로 상당한 부를 쌓은 그는 고향 스트랫퍼드에 큰 저택을 사들였고, 말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 비교적 풍족한 노년을 보냈다. 화려한 성공의 이면에는 깊은 슬픔도 있었다 — 1596년, 그의 외아들 햄닛이 열한 살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아들의 이름 ‘햄닛(Hamnet)’과 훗날의 걸작 「햄릿(Hamlet)」 사이의 묘한 울림에 주목한다.

우리가 매일 쓰는 ‘셰익스피어의 말’

셰익스피어의 진짜 놀라운 점은 따로 있다. 그는 지금 우리가 쓰는 수많은 단어와 표현을 처음 만들어내거나 널리 퍼뜨린 사람이다. 영어에 그가 도입한 단어가 1,700개에 이른다고도 한다.

알고 보면 다 셰익스피어

“얼음을 깨다(break the ice·서먹함을 풀다)”, “황금 같은 마음(heart of gold)”, “부질없는 추격(wild-goose chase)” 같은 표현이 모두 그의 희곡에서 나왔다. 이런 표현들은 영어를 넘어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오늘날 우리도 자연스럽게 쓰고 있다.

불멸의 희곡들

셰익스피어는 평생 약 37편의 희곡과 154편의 소네트를 남겼다. 비극, 희극, 역사극을 넘나들며 인간의 모든 감정을 무대에 올렸다. 그가 죽고 7년 뒤, 동료들이 그의 희곡을 모아 「퍼스트 폴리오(First Folio)」라는 전집을 펴낸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그 작품들을 읽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햄릿」·「오셀로」·「리어왕」·「맥베스」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으로 불리며 가장 높이 평가받는다. 또한 그가 남긴 154편의 소네트는 사랑과 시간, 죽음을 노래한 서정시의 정수로, “그대를 여름날에 비할까”로 시작하는 18번 소네트가 특히 유명하다.

퍼스트 폴리오 표지
1623년 출간된 「퍼스트 폴리오」 표지 — 셰익스피어 희곡을 후세에 전한 전집

줄거리로 읽는 대작들

오필리아 그림
「햄릿」의 비극적 여인 오필리아 (존 에버렛 밀레이, 1852) — 셰익스피어 작품을 그린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

제목은 익숙해도 줄거리는 가물가물한 명작들.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여섯 편을, 후대 화가들이 남긴 명화와 함께 간추려 본다.

각 작품 끝의 ‘공연 영상 보기’를 누르면 해당 공연 영상(유튜브, 영국 왕립셰익스피어극단·글로브 극장 공식 채널)으로 연결됩니다.

햄릿 무덤 장면
무덤 파는 인부가 건넨 해골을 든 햄릿 (외젠 들라크루아, 1839)
비극 · 추정 1600년

「햄릿」

덴마크 왕자 햄릿은 아버지 왕이 갑자기 죽고, 숙부 클로디어스가 곧바로 왕위와 어머니를 차지하자 깊은 비탄에 빠진다. 어느 밤 아버지의 유령이 나타나 “숙부가 나를 독살했다”며 복수를 명한다. 햄릿은 복수를 결심하지만 “사느냐 죽느냐” 고뇌하며 끝없이 망설이고, 그사이 연인 오필리아는 미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마침내 독을 바른 칼과 독배가 오가는 결투에서 햄릿과 왕, 왕비가 모두 쓰러지며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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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
새벽, 이별을 앞둔 로미오와 줄리엣 (프랭크 디크시, 1884)
비극 · 추정 1595년

「로미오와 줄리엣」

서로 원수지간인 두 가문, 몬터규가의 로미오와 캐풀렛가의 줄리엣이 무도회에서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신부의 도움으로 비밀리에 결혼하지만, 가문 간 다툼 끝에 로미오가 사람을 죽이고 추방당한다. 줄리엣은 강제 결혼을 피하려 잠시 죽은 듯 보이는 약을 먹지만, 그 사실을 모른 로미오가 그녀가 정말 죽은 줄 알고 독을 마신다. 뒤늦게 깨어난 줄리엣도 그의 뒤를 따르고, 두 연인의 죽음 앞에 두 가문은 비로소 화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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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와 세 마녀
맥베스와 뱅쿠오 앞에 나타난 세 마녀 (헨리 푸젤리, 1783)
비극 · 추정 1606년

「맥베스」

스코틀랜드의 용맹한 장군 맥베스는 황야에서 세 마녀로부터 “장차 왕이 되리라”는 예언을 듣는다. 야심에 찬 아내의 부추김에 그는 자기 성에 묵으러 온 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죄책감과 의심에 사로잡힌 맥베스는 자리를 지키려 더 많은 피를 부르고, 그의 아내는 광기 속에 손에 묻은 피를 씻어내려다 스스로 무너진다. 결국 맥베스도 파멸하며, 끝없는 야망이 한 인간을 어떻게 집어삼키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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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타니아와 보텀
당나귀 머리를 한 보텀과 사랑에 빠진 요정 여왕 티타니아 (에드윈 랜시어, 1851)
희극 · 추정 1595년

「한여름 밤의 꿈」

어느 여름밤 숲, 요정 나라의 왕과 왕비가 다투는 가운데 사랑의 묘약이 엉뚱한 사람들에게 발리며 네 젊은 연인의 마음이 뒤죽박죽 엉킨다. 장난기 가득한 요정 왕은 아내 티타니아가 잠에서 깨어 처음 본 상대 — 하필 당나귀 머리로 변한 직공 보텀 — 과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한바탕 소동과 웃음 끝에 묘약이 풀리고, 모두 제짝을 찾아 행복하게 끝난다. 꿈처럼 환상적이고 유쾌한 셰익스피어 최고의 희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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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 속의 리어왕
폭풍우 치는 들판에서 미쳐가는 리어왕 (벤저민 웨스트, 1788)
비극 · 추정 1606년

「리어왕」

늙은 리어왕은 세 딸에게 “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를 말로 표현하게 한 뒤 왕국을 나눠주기로 한다. 달콤한 말로 아첨한 두 딸에게 모든 것을 주고, 진심으로 사랑하나 입에 발린 말을 못 하는 막내 코딜리어는 내쫓는다. 그러나 왕국을 차지한 두 딸이 등을 돌리자, 리어는 폭풍우 치는 들판을 헤매며 미쳐간다. 뒤늦게 막내의 진심을 깨닫지만 코딜리어마저 죽고, 리어도 그 슬픔을 못 이겨 숨을 거두는 장엄한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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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셀로와 데스데모나
오셀로와 데스데모나 (대니얼 매클라이즈)
비극 · 추정 1603년

「오셀로」

베니스의 무어인 장군 오셀로는 아름다운 귀족의 딸 데스데모나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그러나 그를 시기한 부하 이아고가 “당신의 아내가 부정을 저질렀다”는 거짓을 교묘히 흘리며 증거까지 꾸며낸다. 질투에 눈먼 오셀로는 결백한 데스데모나를 점점 의심하다 끝내 자기 손으로 그녀를 죽이고 만다. 모든 것이 이아고의 간계였음을 뒤늦게 안 오셀로는 절망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질투라는 감정이 어떻게 사랑을 파괴하는지를 그린 비극이다.

공연 영상 보기

끝나지 않은 미스터리들

위대한 인물에게는 늘 수수께끼가 따른다. 셰익스피어 역시 그렇다. 그의 삶에는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적지 않다.

‘진짜 셰익스피어가 썼을까?’ 작가 논쟁

대학도 안 나온 시골 출신이 이렇게 방대하고 깊은 작품을 썼을 리 없다며, 사실은 철학자 베이컨이나 옥스퍼드 백작이 진짜 작가라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학계의 주류는 셰익스피어 본인이 썼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천재에게 학벌은 필요 없었던 셈이다.

무덤에 새긴 ‘저주’

셰익스피어의 묘비에는 “내 뼈를 옮기는 자에게 저주가 있으리라”는 경고가 새겨져 있다. 이 저주 때문인지, 그의 무덤은 400년이 지나도록 발굴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다.

죽음, 그리고 영원이 된 이름

1616년 4월 23일, 셰익스피어는 고향 스트랫퍼드에서 52세로 눈을 감았다. 그는 고향 교회에 묻혔고, 무덤 위 벽에는 그를 기리는 기념상이 세워졌다.

셰익스피어 기념상
스트랫퍼드 홀리 트리니티 교회에 있는 셰익스피어의 기념상

그러나 그의 이름은 죽지 않았다. 그가 남긴 희곡들은 수백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지금도 전 세계 무대에서 공연되고, 영화와 소설로 끝없이 다시 태어난다. “셰익스피어는 한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사람”이라는 동료 벤 존슨의 말 그대로다.

맺으며 — 인간을 비추는 거울

셰익스피어가 400년이 지나도록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이 곧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진 줄리엣, 복수 앞에 망설이는 햄릿, 야망에 무너지는 맥베스, 질투에 눈먼 오셀로 — 그들은 400년 전 사람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연극은 박물관의 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인간의 거울이다. 무대의 막이 오를 때마다, 셰익스피어는 여전히 우리에게 묻는다 — 당신은 어떤 인간인가.

참고자료 및 더 알아보기

이 글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생애와 작품을 일반 독자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정리한 것입니다. 일부 일화는 후대에 전해지는 이야기로, 사실로 굳어지지 않은 부분도 있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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